* 엘리자베스 2세의 영면을 기도합니다.
지난 70년간 영국 연방을 다스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타깝게도 9월 8일 (영국 현지시간) 서거했습니다. 영국 왕실의 슬픔을 함께 애도하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영면을 기도합니다. 오래전에 [이야기 영국사] 책에서 읽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이야기가 생각나서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 21세기의 첫 여왕, 엘리자베스 2세
1926년 4월 21일에 태어난 엘리자베스에 대한 첫 기록은 할머니인 메리 왕비(조지 5세의 부인)의 일기 속에 “오 하얀 피부와 예쁜 금발의 자그마한 나의 아가야”라는 기록이다. 그로부터 10년뒤에 에드워드 8세가 하야하고 부친이 조지 6세로 즉위하자 그녀는 차기 왕위를 이어받을 1순위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엘리자베스는 통치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엄격한 왕이 되기 위한 수업은 다른 소녀들과 비교했을 때 감수성 많은 소녀시기를 망쳐놓았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준비했으며, 특히 엘리자베스의 교육에는 어머니의 공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즉 어머니는 엘리자베스의 학문적 성취도 중요했겠지만 한 국가를 다스릴 왕으로서 갖춰어야할 사회성을 기르는 데 소홀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구상하여 준비시켰다.
당시 엘리자베스 모친의 교육 바식을 실천한 가정교사는 매이런 크로퍼트이며, 역사교육은 후에 이튼 학교의 교장이 된 C. 마틴이 담당하였다. 숨 쉴 틀 없이 짜여진 교육 일정에서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말을 타고 시골길을 달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인지 그녀는 “내가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시골에서 말과 개들을 사육하면서 지냈을 거야”라고 측근들에게 자주 말하곤 하였다. 물론 그녀는 아직까지 승마를 즐기고 있다.
*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떄 그녀와 동생 마거릿 로즈 공주는 런던에서 국민들과 함께 한 조지 6세 부처와는 떨어져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과 윈저 궁 및 궁 부속별장등으로 옮겨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대전 마지막 해인 1945년 초 엘리자베스는 부친인 조지 6세를 찾아가 “저도 무엇인가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허락해 주세요” 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허락을 얻은 엘리자베스는 또래 소녀들이 봉사하고 있는 ‘구호품 전달 서비스’ 부서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또래의 여자친구들과 사귀면서 그동안 통치자가 되기 위한 꽉 짜여진 통제와 계획 그리고 피난 생활로 오는 무료함으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비록 여자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소위 계급장을 달고 활동하면서 왕위계승자들이 치러야 할 군복무까지 치르는 효과도 얻었다.
* "그리스의 필립 왕자"
한편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받아왔던 이론적인 수업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다듬는 좋은 기회도 갖게 되었으며, 또 그녀의 남편이 될 그리스의 필립 왕자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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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엘리자베스와 필립은 먼 칙척 관계였기 떄문에 처음에는 부담 없이 만나면서 조국의 안위, 애국의 길, 그리고 해군장교의 역할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자주 만났고, 드디어 연인 관계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둘의 관계를 알고 있던 조지 6세는 엘리자베스가 21세 생일을 맞기 전에 그들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947년 7월, 약혼이 선포되고 11월 20일에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거행된 그들의 결혼식이 전세계로 전해지면서 안정적인 영국 왕실의 미래가 보장되었다.
결혼 전날, 조지 6세는 필립에게 에든버러공장, 메리어니스 백작, 그리니치 남작이란 작위를 수여하여 미래 여황의 부군에 걸 맞는 위상을 갖추어 주었다. 이들 부부는 결혼 후 런던에 있는 클래런스 대저택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엘리자베스의 장남이자 현재의 왕세자인 찰스가 태어났다.
1951년에 들어서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엘리자베스는 자주 왕실 행사를 대행하게 되었다. 특히 건강을 일순위로 요구하는 해외순방의 경우는 더욱 엘리자베스부처의 몫이었다. 그해 10월부터 시작된 캐나다, 미국, 그리고 이듬해 1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거쳐 아프리카 케냐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아버지 조지 6세의 서거 소식을 듣게 되었다.
* "21세기의 첫 여왕"
부친의 서거는 자동적으로 그녀에게 왕위가 주어짐을 의미한다. 그녀는 영국에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공적인 일을 하지 않고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던 엘리자베스 2세는 1953년 6월 2일 TV를 통해 전세계 2,500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트서 성당에서 웅장한 대관식을 거행했다. 그녀에게 주어진 공식명칭은 ‘엘리자베스 2세, 신의 가호아래 그레이트 브라튼, 북아일랜드, 그리고 모든 그녀의 소유지의 통치자, 영연방의 수장이며 신앙의 옹호자 (헨리 8세 이후의 영국 왕의 전통적인 칭호)였다...
출처 : 이야기 영국사 / 김현수 지음